부처님의 빛으로 나를 물들이는 시간 - 치문반 동연 > 차례설법

  • 로그인
  • 검색
    사이트 내 전체검색

법문

차례설법

부처님의 빛으로 나를 물들이는 시간 - 치문반 동연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26.05.11 조회35회 댓글0건

본문

부처님의 빛으로 나를 물들이는 시간

 치문반 동연

  

  우리는 흔히 빛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하지만 때로는 스스로를 태워버릴 욕망의 빛을 진리라고 착각하며 맹목적으로 쫓기도 합니다.

  저는 오늘, 빛을 향해 돌진하다 길을 잃은 한 마리 미물을 통해 깨달은 바를 나누려 합니다. 스스로를 태우는 헛된 빛이 아니라, 부처님의 말씀과 행동이라는 바른 빛으로 온전히 물들어 진정한 수행자의 길을 걷겠다 다짐하게 된 저의 이야기입니다.

 

  어느덧 강원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질 무렵, 제 마음 한구석에 작지만 묵직한 질문 하나를 던져준 사건이 있었습니다. 며칠 전 공양실에서 밥을 먹다 무심코 천장의 전등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전등 안에는 날파리도 아닌 꽤 커다란 귀뚜라미 한 마리가 죽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제 마음속에는 세 가지 생각이 차례로 스쳐 지나갔습니다.

  첫 번째는 ‘저 높은 곳에 있는 사체를 나중에 어떻게 치워야 할까’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번거로움이었고, 두 번째는 ‘벌레의 몸으로 태어나 좁은 곳에 갇힌 채 이토록 허무하게 생을 마감했구나. 부디 이 고통에서 벗어나 좋은 곳으로 가거라’라는 연민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지막 세 번째 생각은 저를 아주 깊은 고민 속으로 이끌었습니다. ‘저 귀뚜라미에게 저 뜨거운 전등 빛은 유일한 희망이자 삶의 목적지였겠구나. 하지만 앞뒤 가리지 않고 오직 그 빛만을 향해 돌진하다 보니, 정작 자신이 들어왔던 문조차 잊어버린 채 방황하다 결국 죽음에 이르렀구나.’ 그 순간 저는 깊이 전율하였습니다.

 

  부처님의 법이라는 바른 빛을 향해 가고 있다고 자부하는 저 또한, 정작 수행자로서 들어오고 나가는 법도(法道)를 잊은 채 맹목적으로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바른 길 위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과연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저 귀뚜라미처럼 길을 잃지 않고 바르게 깨달음에 이를 수 있을까?’ 이 고민은 며칠 동안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길을 잃은 듯한 기분으로 마음을 다잡으며 공부하던 중, 저는 치문 서문에 나오는 명확한 이정표와 같은 한 구절을 만났습니다.

 

    非佛之言이면 不言하고 非佛之行이면 不行也라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면 말하지 말고, 

    부처님의 행함이 아니면 행하지 말라.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며칠간 저를 괴롭혔던 고민의 실타래가 단번에 풀리는 기분이었습니다. 귀뚜라미가 잃어버린 것은 단순히 나갈 문이 아니었습니다. 빛 이외의 것을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이미 들어오고 나가는 법도(法道) 자체를 잃어버린 것이었습니다. 부처님의 말씀과 행동이 바로 수행자가 들어오고 나가는 그 법도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진리는 결코 멀리 있거나 복잡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잠시 잊고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진실, 즉 ‘부처님이 하신 대로 말하고, 부처님이 하신 대로 행동하는 것’이 바로 우리 수행자가 가야 할 유일하고도 확실한 길임을 다시금 깨달은 것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얼마 전 봉행된 동학사 부도재를 통해 더욱 선명하고 절실한 가르침이 되어 제 가슴에 돌아왔습니다. 역대 조사님들의 높으신 덕을 기리며 엄숙하게 진행되던 부도재 도중, 제 시선은 우연히 부도 탑 위에 소리 없이 올라앉아 있는 작은 풀벌레 한 마리에 머물렀습니다.

  공양실 천장의 전등 속에서 죽어있던 귀뚜라미나, 차가운 부도 탑 위를 소리 없이 기어가는 저 작은 벌레나,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가사를 수하고 서 있는 저 자신이나 다름이 없이, 결국 이 몸은 잠시 인연 따라 빌려 입은 옷일 뿐이었습니다. 때가 되면 미련 없이 이 육신을 벗어두고 가야 하는 존재임을 그 벌레를 보며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 찰나의 순간, 치문 서문에 나오는 또 다른 구절이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不遇聖敎면 則不發無上菩提之心하고 長沈苦海하야 頭出頭沒하야 

    虛生浪死하나니 實可憫也로다.

    성인의 가르침을 만나지 못하면 위없는 깨달음의 마음을 내지 못하고, 

    길이 괴로운 바다에 빠져서 허우적대며 헛되게 살다가 허망하게 

    죽을 것이니 참으로 가련한 일이다.

 

  이 구절을 한 자 한 자 읊조리며 저는 스스로에게 조용히 물었습니다. ‘과연 나는 이대로 가련하게 허우적대다 허망하게 사라질 것이냐, 아니면 부처님의 법으로 온전히 깨어날 것이냐.’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난 지금 이 소중한 기회를 놓친다면, 저 또한 저 이름 모를 벌레들처럼 생사의 파도 속에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헛된 삶을 살다 죽어갔을지도 모릅니다. 부도 탑 위를 기어가던 작은 미물은 저에게 ‘수행자에게 내일이란 없으며, 오직 지금 이 순간의 정진만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가르쳐준 것입니다.

  그 물음 앞에 한동안 머물렀습니다. 성인의 가르침을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만남이 곧 깨어남이 아니듯, 가르침을 들었다는 것과 그 가르침으로 실제로 변화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성교(聖敎)를 만난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여 보리심을 내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가. 이 물음이 한동안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그러던 중 수행의 초심자인 저에게 구체적인 실마리를 건네준 것은, 얼마 전 동학사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구족계를 수지한 선배 스님들이 들려준 경험담이었습니다.

  스님들은 계를 받으러 가서 배운 것들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재채기할 때는 반드시 소매로 입을 가려야 한다는 것, 길을 걸을 때는 두리번거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 등등...

  처음에는 그저 소소한 규칙처럼 들렸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하나하나의 위의(威儀)는 단순한 예절이 아니었습니다. 몸의 움직임 하나를 다스림으로써 마음의 흐트러짐을 막는, 계율의 가장 구체적인 실천이었습니다. 몸이 고요해질 때 마음도 고요해지고, 마음이 고요해질 때 비로소 부처님의 가르침이 스며들 자리가 생긴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제가 ‘잔소리’나 ‘승가의 규칙’으로만 여겼던 모든 것들을 몸에 익혀나가는 과정 자체가 바로 부처님의 ‘행(行)’을 닮아가는 가장 귀한 공부였던 것입니다. 

  저는 지금 물들일 ‘치(緇)’ 자에 문 ‘문(門)’ 자를 쓰는 ‘치문반’에 있습니다. 저는 이 이름의 무게를 다시 한번 깊이 새겨보며 ‘과연 나는 지금 무엇에 물들고 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선하고 부드러운 부처님의 법에 물들기에는, 아직도 제 안의 거친 습기와 아집들이 너무나도 진하게 남아 있습니다. 오히려 제가 가진 탁하고 고집스러운 색깔로 함께 공부하는 도반들과 이 청정한 도량을 물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두려운 마음이 앞서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간절한 서원을 세워봅니다. 

 

  전등 빛에 눈이 멀어 나갈 문조차 잊었던 귀뚜라미의 어리석음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난 지금 이 순간을 결코 헛되이 보내지 않고 온 마음 다해 공부하겠습니다. 오늘 이 순간에도, 그리고 내일 이 자리에 다시 서는 순간에도, 어제보다 한 걸음 더 부처님의 가르침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바르게 배우겠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배운 이 올바른 법이 세상에 바르게 남을 수 있도록 오직 정진하고 또 정진하겠습니다.

  나의 거친 색을 고집하기보다, 부처님의 자비로운 말씀과 행동으로 제 삶을 먼저 곱게 물들이겠습니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저의 존재 자체가 부처님의 법을 전하는 맑고 투명한 통로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의 앞길에 등불을 밝혀주시는 어른 스님들과 곁에서 함께 걷는 도반 스님들의 따뜻한 가르침을 귀하게 여기며, 매일매일 바르게 물들어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의정부 성불사

대한불교조계종 동학사 충남 공주시 반포면 동학사1로 462 (우 32626) TEL042-825-2570FAX042-825-6068

COPYRIGHTS(C) 2024 DONGHAKSA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