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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常心이 道라 - 사집반 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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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26.05.11 조회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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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常心이 道라 

- 일상의 소임에서 부처를 만나다

사집반 수경

 

 안녕하십니까. 사집반 수경입니다. 오늘 이렇게 큰방에 함께 모여 각자의 공부를 공유하고 서로의 마음을 점검할 수 있으니, 참으로 귀하고 복된 인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동학사에 입학한 지 1년하고도 한철을 보낸 지금, 나의 마음이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공부를 지어갈지에 대해 성찰해 보았습니다. 대혜 종고 선사와 이참정 거사가 주고받은 서신 속에 담긴 가르침을 기반으로 제 경험에 비추어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自道城中으로 着衣喫飯하며 抱子弄孫하여 色色仍舊호대,

  旣亡拘滯之情하고 亦不作奇特之想하며 其餘夙習舊障도 亦稍輕微합니다.

 

 “집에 돌아오고 나서부터는 옷 입고 밥 먹는 일과 자식이며 손주를 품고 노니는 일이나 여러 가지 일상사에 그저 옛길을 따르니, 오래지 않아 얽히고 얽혔던 분별심이 스러지고 또한 초인적인 특별한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그 밖에 오래 훈습된 묵은 장애도 가벼워지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평범한 일상이 어떻게 깨달음의 현장이 될 수 있는지, 또 수행자가 깨달음의 기틀을 얻은 이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집에 돌아와 옷을 입고 밥을 먹는 평범한 삶 속에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결정적인 변화는 바로 그것을 마주하는 ‘마음’의 태도입니다. 예전에는 사소한 일에도 얽매이던 마음, 즉 拘滯之情이 사라지고, 무언가 대단한 경지에 올랐다는 奇特之想조차 내지 않는 無心의 경지입니다. 진정한 깨달음은 특별한 상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특별해지려는 망상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소임의 현장에서 마주한 중도의 지혜

 이 가르침은 현재 삼성각 부전의 소임을 살고 있는 저에게 가장 치열한 수행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소임을 맡고자 할 때부터 누구에게도 트집잡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그 이면에는 삼성각 소임을 완벽하게 해내서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제 안을 가득 채웠기 때문입니다. ‘잘해야지’ 하는 욕심은 곧장 불안과 긴장으로 이어져서 법당 문을 열기 전부터 어깨는 경직되고, 행여 작은 실수라도 할까 봐 마음은 늘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같았습니다. 이런 상태를 스스로 알아채고 힘을 빼면 또 긴장이 너무 풀려버린 나머지, 놓치고 소홀해지는 부분도 생겼습니다. 너무 잘하려다 지쳐버린 마음이 방일이라는 반작용을 불러온 것입니다. 불안과 방일, 긴장과 나태라는 양극단 사이에서 저는 며칠 동안 중심을 잡지 못했지만 그 시간은 저에게 소중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수행이란 끊어질 듯 팽팽한 것도, 너무 느슨한 것도 아닌, 거문고 줄처럼 적절한 탄력을 유지하는 ‘中道’의 구현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제 삼성각 부전의 소임은 제 강원 생활 자체가 되었습니다. 번뇌가 일어날 때마다 일어난 번뇌를 붙잡아 씨름하기보다, 그저 ‘지금 내가 채워야 할 다기물’, ‘지금 내가 피워야 할 한 개비의 향’에 마음을 즉시 돌려놓습니다. 마음을 반야에 두니 상황에 얽매이던 감정에서 평상심으로 되돌아오는 시간이 제법 단축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참정 거사가 말한 ‘夙習舊障’, 즉 묵은 습관의 장애가 가벼워지는 실질적인 공부의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이름 없는 승객으로 살기 : ‘所有’를 비우는 수행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예전에 꾸었던 꿈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꿈속에서 지하철을 탔는데, 승객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또렷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이상한 꿈이라고 생각하고 넘겼는데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꿈속의 지하철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바세계와 같고, 저는 그저 그 안의 목적지로 가야 하는 얼굴 모르는 ‘이름 없는 승객’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무언가 대단한 존재가 되기보다는 인연의 흐름을 타고 묵묵히 제 갈 길을 가는 이름 없는 중생으로서 ‘下心’을 배워야 한다는, 제 무의식이 현실의 저에게 준 가르침이었습니다.

但願空諸所有 - 모든 있는 것을 비워 버릴지언정

切勿實諸所無 - 간절히 없는 것을 진실로 여기지 마라

 

 이 말씀은 대혜 종고 선사께서 방온거사의 게송을 빌려 수행의 방향을 예리하게 가리켜 보이는 대목입니다. 우리는 흔히 수행을 통해 지혜나 평온을 ‘얻으려’ 합니다. 그러나 ‘잘해내야 한다’는 거창한 목표와 강박은 사실 제 마음이 소유하려 했던 무거운 짐, 즉 ‘所有’였습니다.

 저는 이제 그 ‘완벽’이라는 목표를 비워내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대단한 성과를 바라는 욕심을 비우고 지금 이 순간의 빗자루질에, 마지를 올리는 손길에 온전히 머물게 되니, 무겁게만 느껴졌던 소임이 소소한 즐거움으로 다가왔습니다. 현재의 행위에 온전히 머물 때, 소임이 비로소 수행이 되는 것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임을 살며 맺게 된 인연들 역시 큰 가르침이었습니다. 우리 시선 밖에서 이름 없이 헌신하시는 분들의 뒷모습을 보며, 삼성각은 저에게 고행의 장소가 아니라 본래 부처로 머무는 도량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비움으로써 충만해지는 수행의 길

 여러분, 수행은 결코 화려한 명목을 좇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는 ‘완벽해져야 한다’는 허세와 ‘남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강박과 아집을 하나씩 덜어내는 과정입니다. 꿈속의 이름 없는 승객처럼, 우리 역시 이 강원 생활이라는 인연의 흐름 안에서 각자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下心해야 합니다.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 때조차 ‘깨끗하게 만들어야지’라는 소유의 생각에 마음을 뺏기기 쉽지만, 그때마다 다시 ‘쓸고 있는 행위’ 그 자체로 돌아와야 합니다. 더 가지려 애쓰는 삶은 고단하지만, 이미 내 안에 가득한 무거운 마음의 짐들을 하나씩 내려놓는 것만으로도 삼성각의 차가운 바닥을 닦는 행위가 그대로 道가 되고 부처님의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부족한 제가 소임을 통해 마주한 이 소박한 고요함이 우리 모두의 평상심이 되고, 여러분의 일상이 그대로 깨달음의 현장이 되기를 발원하며 오늘 설법을 마칩니다.

성불하십시오.


의정부 성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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